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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자기실현과 자기원형

by 옛날문화와 인간심리 2025. 2. 16.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연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가. 남이 나의 허를 찔러 비난하면 일단 화부터 낸다. 남이 잘났다고 칭찬하면 우쭐해진다. 남이 나를 못났다고 하면 위축돼서 정말 못났다고 믿는다. 어느 경우나 우리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못 보고 있고 정말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을 피하고 있다. 자기 나름의 자화상에 사로잡혀서 그는 눈을 못 보게 된다. 바꿔 말하면 '자아'가 의식에만 매달리면 그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의 세계 무의식을 못 본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을 못 보고 자기 잘난 맛에 또는 못났다는 생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반쪽자리 인생으로 사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자기의 자기 원형

인간에게는 전체로서의 살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그 자신으로서 살지 않고 그의 어느 한 면 만을 내 세우고 살면 언젠가는 그의 다른 면이 그의 삶을 일부로 마저 참여시켜 주기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가 의식에만 집착하면 무의식은 대상기능을 발휘하여 의식에 포함된 어전체가 되려고 한다.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심연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전체가 되게끔 하려는 원동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가사회와 이웃과 다른 사람의 투사와 기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의 탈이나 자아의식에 집착하여 좁고 굳어진 역할 속에 기계적인 인생을 보내지 않도록 그로 하여금 주어진 전생명력을 불태우도록 촉구하는 무의식의 힘, 그 힘은 자아의식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자체의 목적에 의하여 의식에 작용한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체가 되도록 자극한다. 이것이 바로융이 말하는 자기 원형의 기능이다.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하나인 그의 전부를 말한다. 이것 이원형으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전체가 되고자 하는 힘이 원초적으로 인간에게 조건 지어져 있다는 견해에서 온 것이다. 인간의무의식에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전체가 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의식이 일반적으로 의식만을 고집하면 자기로부터 멀어지며 결국 무의식과의 의식적인 관계가 사라진다. 그것은 두 개로 나눠진 세계의 분열을 뜻한다. 무의식은 이런 단절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 단절된 마음을 이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흔히 사람들이 정신적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자기 원형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이 이유가 된다. 자기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단절 그건 바로 우리가 병이라고 부른다.

자기의 자기실현과 자기원형

 

자기의 전일성

 

전일성의 모습이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간단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는 상이 아니라 남과 다른 면도 있고 동시에 같은 면도 있으며 합리적이기도 하고 합리적이지 못하 기도한 특징이 있다. 자기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상징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발현시킨다. 그 하나가 만다라이다. 만다라는 불교에서 승려들의 수도의 도구로 쓰이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과 사각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앙에 최고의 원리를 상징하는 상이 도시되어 있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원륜 또는 마법의 원이라고 부른다. 

 

융은 만다라에 관 해서 알기 이 전에 분석의 대상자들의 꿈에서 곧잘 4로 표현되는 형상이 나인물의 배치 또는 풍경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원초적인 체험으로서 모든 해리된 정신을 통합하는 마음속의 기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서양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 복음자가 네 귀퉁이에 있는 그림과 같이 원과 사위가 전일의 경지로서 무척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원 또는 구가 인간의 영혼, 인간의 마음전체 또는 중심부에 많이 비유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하지만 이에 부합하는 동양의 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것이 가지고 있는 큰 뜻이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신적 발전의 목표

융의 정신적 발전의 목표는 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발 전은 그에 비하면 직선적인 발전이 아니라 자기의 순환적인발전이다. 일방적인 발전은 초기에나 있을 뿐이고 뒤에는 언제나 중앙에 대한 제시로 일관한다. 1927년 융은 마음의 중심과 자기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무가 있는 섬과 마을에 대한 꿈을 꿨다. 그 뒤에 그는 그가 '영원으로의 창'이라는 이름을 붙인 '만다라'의 그림을 정성 들여 그렸다. 이것은 그에게 큰 편안감을 주었다. 그는 그의 그림에 어딘가 중국풍이 풍긴다고 느꼈는데, 때마침 중국에서 빌헬름이 1,000년 된 도교의 경전인 '태을금화종지'라는 책을 보내와서 그것에 심리학적 해석을 가해줄 것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