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적 유형의 학설은 융의 학설가운데서 비교적 초기의 학설에 속한다. 융의 후대의 관심은 점점 깊이 무의식의 내용과 기능에 집중되었으므로 무의식에 관한 체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심리학적 유형론은 의식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유형, 또는 무의식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학설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비교적 쉽게 이해되고, 보현적으로 내향적 외향적이라는 말은 그 말을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일상대화에서 사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원래뜻이 많이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 융이 심리학적 유형에 관해서 그의 여러 논문들을 집대성해서 출간할 때,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이 거의 20년에 걸쳐서 연구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여기서 이 학설이 정신과의사로서 그가 임상에서 관찰해 온 모든 체험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사회계층에서의 인간관계와 반대론자들과의 사이에서 만들어낸 대결과 갈등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 상호 간의 의사소통
인간 상호 간의 의아소통을 방해하는 오해와 논쟁 그리고 편견의 근원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더 핵심가치로 여기는가에 대한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서로말이 엇나가고 격론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반대파가 형성되어 끔찍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남들도 나처럼 생각했거니 믿는다. 특히 화합과 친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우리끼리'는 모두가 한 마음 한뜻이라고 믿고, 그런 믿음을 굳게 하는 방향으로 지속해 나간다. 가까운 사람사이에서는 특히 이러한 동이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만큼 다른 사람이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느끼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깊이 실망하고, 그 정도를 넘어 상대방을 원망하게 되고 그를 저주하며 가끔 배신자로 여기고 증오한다. 우리나라의 민요 '아리랑'의 심리는 바로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다. 그 속에는 남이 나와 똑같지 않다는 인식이 주는 뼈저린 상처와 남이 나와 같다는 내적인 요희구가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남이랑 나랑은 다른 존재이다. 한 가족에서도 이는 해당한다. 이런 구별을 의식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 고통은 인간관계의 진실을 인지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도 융 자신의 인간관계에서의 고통스러운 갈등을 밑거름으로 생긴 것이며, 융이 그 고통을 심리학적 통찰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데 또한 그의 인간형의 특징이 있다고 여겨진다.
융의 유형론
융의 유형론은 물론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학설은 아니다. 근대 서구사회의 개성을 존중하는 풍조를 바탕으로 산출된 이 학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경향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한 것이다.
이런 특징적인 경향의 유형은 이미 동서양의 고대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4액에 근거를 둔 네 가지 성격특징은 순수한 심리학적 유형이라기보다 다분히 생물학적 분류에 속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동양고대의 역 사상은 융 자신도 강조하는 것처럼 융의 심리학과 서로 상통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역의 원리에 입각한 동양의학 이론 가운데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과 견줄만한 유형설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보는 태양인, 소양인 그리고 태음인과 소음임의 네 가지 유형설이다. 물론 이것을 융의 외향형과 내향형에 그대로 부합시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또한 이제마의 유형은 희로애락의 사정과 4가지 장기를 바탕으로 연결된 일종의 체질유형설이지만 이 설은 심리학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여러 정신사의 심리학적 유형
신학과 문학 그리고 철학과 미학등 여러 영역의 정신사를 그의 심리학적 유형의 가설로 조명하면서 융이 확실히 한 것은, 그가 결코 다른 정신과학분야에 간섭하여 그것을 심리주의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곧잘 문학자나 철학자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심리학자가 철학이나 문학을 심리학에 불과한 것으로 환원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심리학적 견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데서 오는 것이다. 또한 자연과학자들은 심리학자나 정신치료가들이 중례나 정신기능 이외의 다른 정신과학분야의 자료에 손을 대면 곧장 이단시하고 하나의 외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은 의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문학이고, 철학해석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이나 문학은 인간정신과 관계없다는 협소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 심령심리를 정상 심리현상에서 고의적으로 끊어버리는 부자연스러운 편견에 기인한다. 융은 앞서 말한 여러 논문에서 다만 자기의 심리학적 가설의 보편성을 시험해 본 것뿐이다. 문학이나 철학이 갖는 많은 가치와 철학가나 문학가나 시인의 인격을 유형론으로 남김없이 설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