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치료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환자의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심리학적 치료로 발전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지식과 체험이 확장되고 풍요로워짐에 따라 정신치료 가운데에서 임상정신의학의 틀을 극복해서 단순한 환자가 아닌 전체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 치료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정신치료는 단순한 증상이 사라지고, 인격의 심층적인 부분을 살피며 인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성숙한 사람을 형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통찰요법과 철저한 정신치료 그리고 분석적 정신치료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치료에 속해있다.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는 모두 환자의 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그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인간전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각자가 자신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치료자와 환자의 거울
치료자와 환자는 서로의 거울을 갖고 있다. 그 거울을 우리는 서로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환자는 치료자에게 무의식적 그리고 의식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존재이다. 환자의 꿈에 등장하는 치료자의 모습, 그리고 치료자의 꿈에 등장하는 환자와의 연관성은 이런 반성의 지표로서 치료상 크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서로를 비추어가며 환자의 숨어있는 개성을 발견하고 이를 보충해 가는 것이 대화의 변증법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융은 무척 지적으로 뛰어난 부인환자를 치료했다. 치료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대화도 깊이가 없어지고 꿈의 해석도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환자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녀도 그런 기분이라고 했다. 다음 전 치료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융은 꿈을 꾸었다. 그는 저녁해 질 무렵 어느 계곡의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오른쪽에 가파른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성이 존재했다. 성탑의 가장꼭대기에 있는 일종의 난간 위에 한부인이 앉아있었다.
그녀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는 고개를 잔뜩 뒤로 추켜야 했다. 융은 잠에서 깨고 나서 목이 아프다고 느꼈는데, 꿈속에서도 그 부인이 자기가 치료하는 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꿈의 보상
이 꿈을 꾸고 나서 융은 생각했다. "내가 꿈에서 내환자를 그렇게 올려다보았다면 실제로는 아마 그녀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은 의식의 태도를 보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융은환자에게 이 꿈을 이야기해 주고 그의 해석을 일러주었다. 이것이 교착되었던 치료상황에 바로 작용하여 치료가 다시 잘 진행되었다.
물론 치료자는 정신치료 기술과 방법, 그리고 치료 이론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그것을 활용해서는 안된다. 오늘 배운 이론이 내일 틀릴 수도 있는 법이다. 이론은 다만 조심스럽게 변형하여 응용해야 만한다. 융은 자기의 분석에서 이론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론은 다만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고 우리는 환자에게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분석심리학에서의 정신치료
분석심리학에서의 정신치료가 때때로는 환원적인 프로이트 학풍을 보여주는가 하면 분석 시간에 따라서 아들러류의 권력에의 의지를 각오하는 듯이 들릴 수 있는 것은 이상에서 설명한 대로 자명한 일이다. 융은 자신의 치료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치료상의 순서를 확정한다든가 계획을 수립한다든가 하는 것을 하지 않으므로 합리적인 머리로 보면 되는 대로이고 뒤죽박죽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치료자의 인간 개성과 그 전체성에 대한 외경의 태도이다. 이것은 또한 무의식적인 창조적 가능성에 무한대의 기대를 걸고 이를 생각해 가는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 정신치료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어느 것이든지 효과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융의 견해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치료에도 적용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한쪽 치료에 어울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물론 분석적인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단 한 시간의 좋은 충고나 상담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