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진심으로 깨다든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무의식' 또는 '무의식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는 너무 쉽게 그런 것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 것이 과연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 차라리 무의식의 존재를 인식하는데 올바른 태도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그 존재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개념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체험을 토대로 획득한 사실에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경험이란 그 체험하는 주체에 따라서 여러 가지이므로 같은 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설 가운데도 무의식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설이 존재한다.
인간 마음속의 무의식
인간의 마음속에 무의식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과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연구를 한 사람은 프로이트이고, 이러한 무의식적인 정신이 어떤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노이로제 환자를 치료를 해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훌륭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뒤에서 그를 인도한 무명, 유명한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 가깝게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그녀들은 아니마 원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주인공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베아트리체는 그런 존재이다.
우리가 이러한 원형과 더불어 친숙해지고 동시에 그 영향에 맹목적으로 자기를 맡길 필요가 없어졌을 때, 우리는 자기실현의 가장 큰 시련을 극복하게 된다.
원형론
꿈의 분석을 진행하면서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의 일부로 동화하는 의식화의 작업을 실행할 때 처음에는 주변에서 일어난 일, 현재 연애하고 있는 사람 또는 옛날에 알고 있는 친구 등 그 개인이 직접 체험한 내용이 꿈에 잘 나타나고, 그런 만큼 그 내용은 의식화하기에 비교적 쉬운 특질들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대개 개인적 무의식에 해당되는 내용들로서 대부분 '그림자'에 속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분석이 진행됨에 따라 차츰 '모르는 남자', '처음 보는 뜻밖의 풍경' 등 현실과의 연관성이 희박해지면서 그 내용은 고태성과 원시성을 띠게 된다. 분석을 당하는 사람은 이제 개인적 무의식을 통과하여 점점 무의식보다 더 깊은 층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바꿔 말하면 그는 이제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인식해야 할 단계에 온 것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층은 마치 지각 속에 존재하면서 좀처럼 직접 밖에 노출되지 않는 불덩어리와 일치한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우리가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하듯이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어떤 사람이 심각한 정시적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비로소 의식표면에 나타나 그 모습의 일부를 나타낸다. 혹은 그것은 지하의 물줄기처럼 의식화의 작용, 그리고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 내용을 의식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솟아 나오는 창조의 샘이다.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항상 의식에 작용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나가게 된다.
하지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 두 번쯤 충격적인 꿈을 꾼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일 같지 않은 흉몽 또는 악몽 혹은 감동적인 꿈이라 부를만한 꿈을 경험한다. 물론 대부분은 꿈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대인 또는 지성인의 수치라고 생각하여 남에게 말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형이란 바로 이런 충격적인 꿈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정신의 가장 기저에 존재하는 여러 조건들이다.
원형의 집단적 무의식
원형은 집단적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집단적 무의식의 층은 많은 원형으로 구성된다. 원형을 집단적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해당한다. 화산이 터져서 지각을 덮으면 거기에 모든 생물이 소멸한다. 원형의 에너지도 때로 이와 같은 무서운 힘으로 의식을 지배하여 그 기능을 소멸시킨다.
어떠한 이성적인 설득으로도 변하지 않는 피해망상,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를 체험한 사람은 거기서 원형이 지닌 큰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정신병리 현상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꿈이나 일상생활에서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원시사에서는 이미 이런 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말이 있었음을 융은 제시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집단적 무의식의 에너지라고 보는 강렬한 정감의 세력은 원시사회에서는 이런 명사 속에 투사되었던 것이다.
원형은 인간의 전 정신을 사로잡는 원초적 폭력이라 칭할 수 있다. 이 힘은 자아로 하여금 전통적인 인간의 영역을 극복하게 만든다. 자아의 힘은 원형과의 접촉을 통해서 팽창되거나 과장되고 자유를 잃으며 원형의 큰 세력에 갇히게 된다. 그것은 창조적이든 파괴적이든 자아를 구속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한인간이 위대한 사랑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자기를 희생하거나 위대한 창조적 영감에 사로잡혀 불후의 작품을 남기는가 하면 악마적인 파괴의 화신이 되어 집단으로 해를 끼치는 것이다.
크나큰 조물주의 힘과 현자의 지혜에 대해서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그리고 여성이 남성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해 온 모든 것 그 태초로부터의 체험이 침전이 바로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