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과 심리적 현실과 외부, 그리고 공유된 현실사이에 있으면서 양쪽 모두에 의해 촉진되고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제3의 경험의 중간 영역을 제시했다. 이 영역은 주체의 전능통제를 극복하는 주체와 대상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잠재적인 공간이다. 또한 이 영역은 외부와 내부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분리되어 있도록 지속하는 인간의 항구적인 과업을 실행하는 각 개인의 안식처다. 생애 초기에 이처럼 중간영역에서 중간현상과 중간대상이 나타나고, 곧이어 상징의 사용과 놀이 그리고 문화가 나타난다. 중간대상은 엄지손가락과 담요, 또는 인형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에는 계속적으로 이용하는 단단한 물건일 수도 있다.
중간대상과 중간현상
중간현상은 유아의 음악적 발성이나 리듬에 맞춰서 움직이거나 다른 습관과 의식과 같이 좀 더 형태가 없는 상태를 띠고 있는데, 보통은 유아가 잠자기 전에 나타난다. 부모는 중간대상의 사용을 인정하는데, 이것은 유아가 그들의 환상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부모가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중간대상과 중간현상은 건강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중간대상과 중간현상은 영아기와 걸음마 시기에 홀로 있는 시간의 핵심적인 대부분을 차지하고 심지어는 아동기에도 외로움의 고통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유아기에 만들어진 패턴은 아동기까지 계속될 수 있고, 따라서 원래의 부드러운 대상은 잠자리에 들 때 또는 고독할 때 아니면 우울한 기분이 들 때에도 지속적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간대상과 중간현상을 통해 유아의 놀이와 공유된 놀이 그리고 창조성이 최초로 나타나게 된다. 유아가 자라나면서 중간현상과 중간대상의 중요도는 서서히 떨어지게 된다.
문화적 경험의 단위
사람과 문화적 경험은 하나의 단위를 만든다. 태어나고 나서 1년간의 창조적인 놀이는 문화적 유산에서 어떤 것을 끌어내고, 또한 이것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무생물 세계에 대한 이와 같은 관심은 핵심적인 자기 조절 능력을 갖는 대상과의 관계의 한 유형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잠재적 공간이 고통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놀이로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의 분리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의 연장선에서 분리불안은 대상자로부터 떨어지는 것의 거부, 홀로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실제로 분리되었던 경험이 있는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시도로 끈을 사용하여 물건들을 묶는 데 집착하는 8세 소년의 사례를 말했다. 만약 가족환경이창조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이 무한한 기회의 영역에서의 삶을 촉진한다면 분리는 점차적으로 그 개인의 문화가 가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일종의 연합을 이루게 된다.
상상 속의 동반자
유아와 미취학 아동의 옆에는 상상 속의 동반자가 존재한다. 이 동반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동물이다. 아동은 자신이 창조한 동반자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 마냥 상당기간 함께 놀고 대화를 한다. 또한 그 동반자는 진짜 사람처럼 생긴 대상일 수도 있다. 상상 속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의 발달적 기능에 대해 여러 가지 정신분석적인 해석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는 아동이 치열하게 외로움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형제가 태어났을 때처럼 엄마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서 무시나 거절을 당하는 경험이나 입학 전에 같이 어울려서 놀 친구가 없는 것은 외로움의 다소 일반적인 이유가 되거나 상상 속의 동반자를 만드는 동기가 된다. 이동의 삶에서 나타나는 결핍과 덜 심각한 자기애적 외상은 이와 같은 환상에 의해 보상된다.
상상 속의 동반자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다. 그들은 친절하고, 똑똑하며, 강하고, 사랑스럽고 단정하고 충실하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이런 상상을 통해서 아동은 유아적 전능감이 사그라지고 이상화된 부모상을 점점 잃어가며 애도반응이 발현되는 시기동안에 부모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상상 속의 동반자는 모든 아동이 자기애적 수호자, 발달과정과 관련 없이 모든 아동이 체험하는 전환기적 자기와 일상의 외로움을 낮춰주고 불가피한 고독에서 유익을 얻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